[이슈프리즘] 상시화 필요한 '기촉법'

입력 2023-11-07 17:52   수정 2023-11-08 00:59

부산의 중견 조선업체 대선조선은 지난달 12일 부랴부랴 주채권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나흘 뒤면 워크아웃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효력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대선조선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처했지만, 수주 물량이 쌓여 있어 정상화가 가능한 상황이다. 항공기 부품 제조업체 아스트도 지난 7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채권단과 본격적인 정상화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다른 기업들은 이들 업체처럼 워크아웃을 통해 신속하게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국회의 태만과 사법부의 반대로 기촉법의 재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위기가 한국 경제를 덮치면서 최근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금융감독원의 신용위험 평가 결과 작년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된 업체는 185개로 전년보다 25개 늘었다.

이런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워크아웃이다. 기촉법은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들이 줄도산하자 2001년 한시법(유효기간이 정해진 법)으로 만들어졌다. 워크아웃은 기촉법을 근거로 채권단 75% 이상이 동의하면 채무 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부실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이끄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돼왔다. 기촉법은 네 차례에 걸친 법률 제·개정을 통해 연장되며 올해까지 유지돼왔다.

기촉법이 일몰되면서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이 기댈 수 있는 수단은 이제 법정관리밖에 남지 않았다. 법정관리와 비교하면 워크아웃의 장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기업은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워크아웃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한 비율은 34.1%로 법정관리(12.1%)에 비해 훨씬 높았다. 정상화에 걸리는 기간도 워크아웃이 3.5년으로 통상 10년 걸리는 법정관리보다 짧았다. 워크아웃이 더 신속하고 유연하게 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기업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지만 기촉법의 재입법이 이뤄질지, 언제 될지 모두 불투명하다. 기촉법의 재입법은 ‘1차 관문’인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조차 넘지 못했다. 여야 의원들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지만, 극한 대립 탓에 관련 논의가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촉법의 일몰 기한이 다가올 때마다 존속 여부를 놓고 논란이 반복됐다. 금융위와 기업들은 기촉법을 연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시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법원은 기촉법을 없애고 사법부 영역에서 구조조정이 일원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원행정처는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의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기촉법 연장 반대 의견을 냈다. 구조조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밥그릇 싸움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피해만 커지고 있다.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로 한계기업의 상황은 나아질 여지가 많지 않다. 워크아웃제도의 유용성이 커진 때에 정작 기업이 기댈 언덕이 사라지는 것은 큰 문제다. 국회는 당장 재입법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반복돼온 법률 일몰과 재입법의 논란을 끝내고 기촉법을 상시화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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